[박위 KTX 낙상 논란과 사라진 관용]

박위 KTX 낙상 논란을 보며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다. 둘 다 유럽에서 겪은 일이다.

첫 번째는 2023년 초, 아내 유정과 암스테르담에서 쾰른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일이다. 우리는 승차하면서 하차 도우미를 신청했다. 국경을 지난 후 다가온 독일인 직원은 빡빡이 머리에 '독일 사람이 이렇게 밝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쾌활했다.
내릴 때 보자며 활짝 웃고 떠난 그는 정차할 때까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유정이 직접 짐을 끌고 플랫폼에 내렸을 때, 그는 이미 다른 직원들과 수다를 떨며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직원은 해맑게 웃으며 자기 아들이 K팝을 무척 좋아한다는 쓸데없는 개인사만 한참 늘어놓고 사라졌다.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한국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두 번째는 올해 초 마드리드에서 발렌시아로 이동할 때다. 스페인은 놀랍게도 역마다 이동 지원 센터가 별도 사무실로 있었다. 정직원으로 보이는 인력들이 수하물을 체크하고 탑승 정보를 꼼꼼히 확인했다.
출발 시각이 다 되자 직원이 그제서야 이상하다며 우리가 타야 할 기차가 출발 목록에 없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열차는 우리가 있던 아토차역이 아니라 20분 떨어져 있는 차마르틴역 열차였다. 청량리에서 타야 할 열차를 서울역에서 기다린 셈이었다.
두 돌 채 안 된 아기 도도와 캐리어 4개, 유모차를 끌고 다른 역으로 낑낑 이동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한국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얼마 뒤 진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스페인에서 시속 200km로 달리던 고속열차가 탈선해 다른 열차와 충돌하면서 40명 이상이 숨지는 참사가 난 것이다. 불과 사흘 전 타고 다닌 열차들이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이동지원센터가 아무리 번듯해도 가장 중요한 승객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실수와 불안, 그리고 관용

이런 일련의 경험 때문에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철도 서비스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안전뿐 아니라 장애인 승객 지원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유튜버 박위 씨의 문제 제기는 개인적으로 다소 투박하게 느껴졌다. 사회복무요원의 개인적 실수가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하며 공론화에 나선 것은 다소 톤 앤 매너 면에서 섬세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거대한 백래시 역시 납득할 수 없다. 전신마비 휠체어 사용자가 낙상할 때 얼마나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사람들은 정녕 모르는 것 같다. 몸이 넘어질 때 자신을 보호할 반사신경조차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와주려고 하다가 나온 실수를 가지고 그러느냐’는 반론은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 사회복무요원은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KTX가 배정한 공식 인력이다. 설령 발단이 개인의 실수였다 해도 관리와 안전의 최종 책임은 KTX가 져야 마땅하다.

한편, 유럽과 한국의 문화 차이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유럽에서 느낀 것이 시스템의 부실함과 인적 실수의 황당함이었다면, 박위 사건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감정은 사람에 대한 여유와 관용의 완전한 상실이다. 유럽의 직원들은 황당할 만큼 어설펐지만 적어도 그 어설픔으로 인해 모종의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교한 서비스와 안전망을 자랑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며, 이는 박위의 문제 제기에도 똑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었다. 어느 한쪽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온 사회가 덤벼들어 서로를 물어뜯는 각박한 칼날 위에 서 있다.

3년째 반복되는 '을들의 전쟁'

나는 이 사건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3년 전 주호민 사건을 떠올렸다. 특수교사를 신고한 유명 웹툰 작가 부모와, 열악한 환경에서 헌신을 요구받는 특수교사 진영과의 첨예한 대립 말이다.

주호민 사건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법적 공방이 길어지는 동안 현장은 피폐해졌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수교사의 90% 이상이 아동학대 피의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신뢰는 붕괴되었다. 국회에서 통합교육 결의안이 통과되고 여러 정책 선언이 이어졌지만, 현장의 깊은 불신과 흉터를 치유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두 사건은 시차를 두고 불행할 정도로 닮아 있다. 학교 당국이 학폭 사안을 특수교사 1인에게 덮어씌우고 뒤로 빠졌듯, KTX 역시 사회복무요원의 보조에 장애인 이동 지원을 전적으로 일임한 채 조직적 안전 책임을 뒤로 숨겼다. 시스템은 비겁하게 빠지고, 현장의 취약한 지원 인력과 장애 당사자만이 맞붙는 ‘을들의 전쟁’이 다시 한번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장애인 집단 전체를 향한 징벌적 백래시와 혐오의 폭발이다.

개인의 마녀사냥 대신 시스템의 책임을

지금 필요한 것은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유튜브를 통한 마녀사냥이 아니다. 실수를 저지른 사회복무요원 개인을 징계하느냐 마느냐의 소모전도 아니다. 사회복무요원에게 전가된 이동 지원 체계를 철도공사 차원의 전문 전담 인력과 안전 설비 확충으로 전환하는 실질적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면 어떨까?

사건 발생 3년이 지나도록 상처만 남긴 주호민 사건의 전례를 이번 KTX 사건에서도 똑같이 되풀이할 수는 없다. 흠집 내기와 집단적 매도는 조기에 싹을 자르고, 구조적 대안 마련을 위한 성숙한 대화가 조속히 시작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KTX와 국토교통부 같은 기관에서 빠르게 입장을 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최소한의 관용과, 그 필연적인 허점을 메우는 단단한 시스템의 책임이 함께 성숙하기를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