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킬 모음

지난 몇 달 동안 만들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스킬 5종을 공개합니다. 사실 이렇게 공개되는 수많은 스킬 가운데 직접 다운받아서 쓰게 되는 스킬이 많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이 스킬들 중 일부라도 사용하시는 스킬에 통합하거나, 아이디어라도 가져다 쓰시면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먼저 말씀드리면 제가 만든 스킬들은 대체로 무거운 편입니다. 최대한 많은 업무를 절차화하려고 노력했고, 개중에는 의존성 설치와 유료 API 키 입력이 필요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 스킬들은 시각장애로 인한 컴퓨터 업무 제약을 에이전트를 통해 뛰어넘고자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취미나 실험이 아니라, 제 현업에 바로 적용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비용도 시간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최상의 결과만을 목표로 만들고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스킬이 고도화되는 것이 곧 저의 업무 성과에 반영되니까요.

다만 공개를 위해서 개인정보 포함된 것들은 모두 삭제하고 스킬도 조금 다이어트하긴 했네요. 그 작업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설치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Claude Code, Codex, Antigravity 같은 AI 에이전트에게 URL을 주면서 전체 스킬을 설치해 달라고 프롬프팅하는 것입니다.

https://github.com/Engccer/skills-for-the-blind

그게 아니라면 터미널에서 아래 명령어를 입력하여 먼저 skills-for-the-blind 스킬을 설치한 후 AI 에이전트에게 이 스킬에 따라 실제 5종을 설치하고 관리해 달라고 프롬프팅하셔도 됩니다. 이 스킬은 나머지 5개의 실제 스킬을 설치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가벼운 오케스트레이터 역할의 스킬입니다.

npx skills add Engccer/skills-for-the-blind -g

덧. 이 스킬들을 돌리는 데 예상보다 많은 토큰이 소모될 수 있습니다.

TIP: 아래 스킬 사용법에서 특정 파일을 지목하며 프롬프팅하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데, 로컬에서 AI 에이전트 사용할 때 파일을 지목하는 범용적인 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원하는 파일의 경로를 입력하는 것입니다. Windows에서는 Ctrl+Shift+C를, Mac에서는 Command+Option+C를 누르면 포커스되어 있는 파일의 경로가 복사됩니다. 이렇게 복사한 파일 경로를 프롬프트 창에 붙여넣고 프롬프팅하시면 AI 에이전트가 딱 그 파일에 대해서만 작업합니다.


1. agent-cli-tts-summary 스킬

일단 복잡한 작업을 마친 AI 에이전트들은 말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걸 일일이 스크린 리더로 확인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만들었습니다. 초기에는 GitHub에 공개된 다른 TTS 프로그램들을 많이 바꿔 가면서 사용해 봤는데 스크린 리더로 단련된 제 귀의 성에 차는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AgentVibes라는 훅 기반 프로그램에서 출발해서 완전히 독자적인 스킬로 만들었고, 기본은 Windows와 Mac에 내장된 TTS 음성을 사용합니다. 원하시면 Gemini나 ElevenLabs API 키를 넣어서 조금 더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경우 별도 과금이 발생합니다.

사용 방법은 스킬대로 한 번 설정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때 훅과 지침 등을 모두 설정해 주고, 다음부턴 스킬을 호출할 일은 없습니다.

2. hwpx-automation 스킬

만드는 데 가장 공을 들인 스킬입니다. 한글문서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공개돼 있고 스킬들도 나와 있는데요. 아마 제가 만든 스킬이 가장 무거울 것입니다.

무거운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 스킬 하나로 한글문서 읽기부터 편집, 생성까지 모든 걸 다 하고 싶었습니다. 한글 문서를 마크다운으로 안정적으로 파싱하여 AI 에이전트들이 내용을 빠짐 없이 파악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역할이고, 남이 준 한글 문서에 내 정보를 넣어서 편집하는 일, 마크다운 문서를 HWPX 문서로 변환하는 일, 동의서 같은 문서에 서명 이미지를 삽입하는 일 등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학교 업무를 하면서 꽤나 복잡한 다단 문서까지도 안정적으로 생성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참고로 HWP는 일단 HWPX로 변환한 후에 처리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시중에 HWP를 바로 파싱하는 MCP도 공개되어 있는데 제가 써 보니 복잡한 표에서 파싱 오류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제 스킬은 무조건 HWPX로 변환 후에 작업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글문서 특성상 아무리 고도화하더라도 자잘한 오류는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작업 후에는 반드시 비장애인 동료의 검토를 거쳐 주세요.

사용법은 한글문서 관련 작업 때마다 스킬을 호출해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API 키는 필요 없으며, 대신 미리 설치해 주어야 하는 의존성 패키지들이 여러 개 있는데 스킬 첫 실행 시 자동으로 안내됩니다.

3. docparse 스킬

이 스킬은 hwpx-automation 스킬보다도 더 오랫동안 구축해 온 스킬입니다. PDF, 이미지, 한글문서 등을 마크다운으로 파싱하는 스킬입니다.

시중에 나온 웬만한 오픈소스 및 상용 OCR 도구와 문서 파서들은 다 써 본 것 같은데요, 그 어느 파서도 완벽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예 다종 파서를 교차 검증하는 스킬로 만들었습니다.

일단 특정 파일을 이 스킬을 사용해서 파싱하라고 하면 스크립트로 검사부터 합니다. 어떤 파서 조합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진단하는 것이죠. 스킬에 넣어둔 주요 파서는 Upstage, Gemini, LlamaParse, opendataloader-pdf, Mistral, 5종이고 OCR 도구로는 Google Vision이 있는데요. 이미지 스캔 파일이면 Upstage와 LlamaParse로, 텍스트 기반이면 ODL과 Upstage로, 길이가 짧으면 Gemini로 길면 LlamaParse로, 외국어가 있으면 Mistral로 교차 검증하고요, 만약 오타까지 보존해야 하는 손글씨면 Google Vision으로 초벌하고 에이전트가 직접 보면서 감수하는 식으로 파싱을 합니다.

짧은 손글씨 문서부터 수백 쪽에 이르는 의료 문서까지 수없이 많은 문서를 여러 번 파싱하면서 계속해서 최적의 조합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때문에 돈도 많이 썼습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일단 교차 검증을 해 주니 한 파서에 의존할 때보다는 훨씬 높은 품질의 마크다운 문서가 나옵니다.

사용법은 이 스킬이 사용하는 API 키들을 먼저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ODL을 제외하면 모두 상용 파서들이므로 API 사용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어 품질이 우수해서 가장 자주 쓰게 되는 Upstage 요금이 조금 센 편이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LlamaParse가 월 1만 크레딧까지 무료인데 품질이 매우 좋아서 딱 하나만 쓰라면 저는 LlamaParse를 추천합니다. 이 외에도 Google Vision도 월 1,000페이지까지는 무료이고, Gemini와 Mistral도 무료 티어가 넉넉해서 꼭 API 키를 발급하시길 추천합니다.

스킬을 실행하면 API 키 설정을 포함해서 필요한 것들을 안내해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는 문서를 지목하면서 docparse 스킬 사용해서 파싱해 달라고 프롬프팅하시면 됩니다.

4. speech-toolkit 스킬

TTS(텍스트를 음성으로), STT(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스크립트 모음입니다. TTS는 Gemini/ElevenLabs/OpenAI/Speechify 4종, STT는 Daglo/Deepgram/ElevenLabs/Gemini/Mistral 5종입니다.

앞선 docparse 스킬처럼 최적의 스크립트를 추천해 주는 방식은 아니고 원하시는 TTS/STT 모델을 지목하면서 변환해 달라고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이 문서를 Gemini 음성으로 변환해 달라고 하거나, 이 오디오 파일을 ElevenLabs를 사용해서 전사해 달라고 프롬프팅하시면 됩니다. 각자 가지고 계신 API 키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한국어 전사 도구로는 클로바노트가 품질이 좋은데 API 키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Daglo를 넣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설정이 복잡해서 비추천하고, 경험상 ElevenLabs STT가 비용은 조금 비싸도 품질이 가장 좋았습니다. 대량 전사에는 Deepgram도 괜찮았고요. 짧은 글 음성으로 바꿀 때는 Gemini가 품질이 가장 좋은데 텍스트가 길어지면 조금 부자연스럽더라도 ElevenLabs가 안정적입니다.

5. abridge 스킬

이건 가장 최근에 만든 스킬인데 이번에 배포하는 스킬 중 가장 가볍고, 만족도가 상당히 좋습니다. 긴 문서를 짧게 요약해 주는 스킬인데 원문의 구조와 톤을 살려서 요약해 주는 스킬입니다. 원문의 문장들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서 요약하기 때문에 AI 방식으로 요약한 게 아니라, 원문의 흐름과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요약본을 음성으로 변환하는 단계도 선택할 수 있는데, 그러면 일종의 축약 버전 오디오북이 됩니다. 긴 문서를 원문 느낌을 살리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스킬에서 사용하는 TTS 스크립트는 제가 가장 만족하는 ElevenLabs로 설정해 두었습니다. 따라서 음성 변환까지 원하시는 경우에는 ElevenLabs API 키가 필요합니다.

사용 방법은 요약하고자 하는 문서를 지목하면서 abridge 스킬로 요약해 달라고 프롬프팅하시면 됩니다. 다만 지목하는 문서가 PDF나 HWPX 같은 파일들인 경우에 앞선 docparse 스킬이나 hwpx-automation 스킬로 먼저 파싱한 후 작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혹시 사용하시면서 개선할 사항을 발견하시면 GitHub에 이슈로 남겨 주세요. 개인적으로 연락 주셔도 좋습니다~ 저는 늘상 사용하는 스킬들이니 앞으로도 계속 고도화해 나갈 예정입니다 :)

[TFE 리뷰] 냉수는 되는데 온수는 왜 안 될까

기술의 발전이 눈부시다. 하지만 그 결실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 지난 3~4년간 AI의 급격한 일상 침투로 그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AI로 인력이 대체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주 작은 일상생활도 기술 장벽에 의해 가로막힌다. 예를 들어, 상지 지체장애인이나 나 같은 시각장애인은 정수기에서 적정량 온수를 받는 것조차도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다.

5년 전 신혼 가전을 마련하면서 LG전자의 얼음정수기냉장고를 구매했다. 얼음을 얼리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내겐 그 이상의 뜻밖의 이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정수 500ml 출수해 줘." 이렇게 말하면 정확히 그만큼 물이 나오는 것이다.

이건 나에게 작지 않은 혁신이었다. 이전까지는 라면의 물량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음성을 통한 출수량 제어 기능 덕분에 더 이상 짜거나 싱거운 라면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이 편리한 기능이 일반적인 정수기에서는 반쪽만 작동한다. 온수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수기에 대고 "온수 150ml 출수해 줘"라고 말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법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국내 전기용품안전기준 KC 60335-2-21의 22.113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음용수 온수기는 이중 조작으로 온수가 토출되는 구조여야 한다."

취지 자체는 합리적이다. 화상 방지를 위해 두 단계에 걸쳐 조작하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조작'이 사실상 물리적 버튼만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음성 명령을 '조작'으로 인정하는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준은 2007년에 제정되었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바로 그 해다. AI 음성 인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의 규정이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규정 한 줄이 막고 있는 것들

나는 1년 전 LG전자의 볼드무브(Bold Move) 활동에 참여했다. 이때 이 구시대적 규정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 처음 듣게 되었다. 참고로 볼드무브는 LG전자가 장애인과 노약자의 가전 사용 편의성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국내 최초(아마도 세계 최초) 장애인 사용자 커뮤니티다.

이 활동에서 전자제품 사용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정수기 온수 이야기가 나왔다. 손의 세밀한 제어가 어려운데 온수를 받으려면 버튼을 두 번 누르거나 동시 조작해야 해서 혼자 받기 어려운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이것은 사실상 온수를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나도 온수를 받을 때면 늘 얼마간 긴장을 하고 있었다. 자칫 물이 넘쳐 흐를까 봐 조심스럽게 받는 것이다. 다른 시각장애인 지인들에게도 물어봤다. 다들 비슷한 불편을 안고 살고 있었다. 그제서야 너무 일상적인 불편이라 불편인 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역설적인 상황이다. 냉수와 정수는 음성으로 정확한 양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화상 위험이 있는 온수에서는 음성 제어가 차단되어 있다. 더 위험한 쪽에서 오히려 보호 기술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은 이미 와 있다

수년 전만 해도 나는 옷을 고르거나 우편물을 읽으려면 사람을 불러야 했다. 지금은 아니다. Seeing AI, 챗GPT가 내 눈을 대신하여 상황을 말로 설명해 준다. 집 안에는 LG ThinQ 허브를 포함해 7개의 AI 스피커를 놓았다. 시간이나 날씨를 확인하는 기본적 기능뿐 아니라, 보일러 온도를 바꾸고, 세탁기가 다 돌아갔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전부 음성으로 처리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음성 인터페이스는 '편리'가 아니다.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제조사 쪽도 준비가 되어 있다. LG전자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AI 음성 인식 기술을 갖추고 있고, 냉수와 정수에는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음성으로 온수를 안전하게 제어할 기술은 이미 존재한다. 그런데 20년 전 규정이 그 기술의 적용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라는 도구

여기서 '규제 샌드박스'라는 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낯선 개념일 수 있다.

이름 그대로 '모래놀이터'다. 아이들이 모래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처럼, 기존 규제를 일정 기간·일정 범위 안에서 면제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실제 환경에서 시험해 보게 하는 제도다.

핵심은 '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증거를 모으는 것이다. 통제된 조건에서 실증 데이터를 쌓는다. 그 데이터를 근거로 기존 법을 바꿀지 유지할지 판단한다. '잘 모르겠으니 일단 금지'도 아니고 '너희를 믿고 모든 걸 맡긴다'도 아니다. 감이나 추측이 아니라 데이터로 규제를 섬세하게 설계하는 장치가 바로 샌드박스다.

해외에서는 이 도구가 이미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특히 접근성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여럿 있다.

미국부터 보자. 안전 인증 기관 UL은 지난 2025년 6월 가정용 전기레인지 기준(UL 858)을 개정했다. 이전에는 금속 표면의 최대 온도가 33°C를 넘으면 안 된다거나, 최대 화력으로 30분간 주철 팬에 담긴 식용유가 발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물리적 기준만 있었다.

하지만 최신 개정판에서는 스마트 기기의 원격·음성 제어를 공식 허용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안전 기준을 추가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 끊기면 기기가 스스로 꺼지도록 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해킹되지 않도록 암호화를 의무화하고, 기기 오작동 시 집안의 차단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까지 검증하도록 했다. 안전의 기준 자체가 바뀐 것이다. '사용자가 버튼 앞에 서 있는가'가 아니라 '시스템이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차단하는가'가 핵심 질문이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안전 장치도 함께 발전하도록 개정한 것이다.

EU도 AI 기본법에 의미 있는 샌드박스 규정을 두고 있다. 제59조는 규제 샌드박스 안에서 개인정보 활용의 특례를 둔다. 공중 보건, 교통·이동성, 환경 보호 같은 공익 목적의 AI를 개발할 때, 원래 다른 용도로 수집된 개인정보를 샌드박스 안에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이나 건강 관련 AI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물론 데이터 격리, 접근 제한, 실험 종료 시 삭제 등 10가지 엄격한 조건이 전제된다. 개인정보보호에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EU조차도, 공익을 위한 AI 혁신에서만큼은 통제된 실험의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은 더 과감하다. 일본에서는 2017년부터 자율주행 전동 휠체어의 실증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를 지정하면 휠체어가 알아서 이동하고, 내린 뒤에는 빈 상태로 대기 장소까지 자동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2020년 하네다공항에서 세계 최초로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이후 간사이·나리타·오사카 공항으로 확대되었다. 주 이용자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와 장애인이다.

이런 실증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근거로 2022년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었다(2023년 4월 시행). '이동용소형차'라는 새 카테고리를 만들어,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전동 휠체어 규격의 이동 수단을 보행자로 인정한 것이다. 이전에는 매번 경찰의 개별 허가가 필요했지만, 개정 후에는 사전 신고만으로 일반 도로 주행이 가능해졌다. 아직은 공항과 일부 시범 지역 중심이지만, 법이 바뀌면서 역 주변이나 상점가 같은 생활권으로 실증이 확대되고 있다. 실험이 법을 바꾸고, 바뀐 법이 다시 실험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이 있다. 먼저 통제된 환경에서 시도하고, 데이터를 쌓는다는 점이다. 그 데이터로 법을 바꾼다. 규제가 혁신의 벽이 아니라 혁신의 검증 도구가 되는 것이다.

온수 한 잔에서 시작하자

정수기의 온수 음성 제어가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기능 요청이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질문이다. 물리적 버튼만을 '조작'으로 인정하는 20년 전의 프레임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이 프레임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손이 불편한 사람,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정수기 앞까지 갈 수 없는 사람은 계속 배제된다. 정수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 접촉이 전제된 가전이라면 어디서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가지 장애인 당사자로서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는 점이다. AI 스피커가 수집하는 데이터가 어디로 가는지, 장애인의 음성 패턴 같은 민감 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 그 투명성은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타협이 없다.

그러나 그 우려를 이유로 20년 된 규정을 방치하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라. 사용자가 "온수 150ml 출수해 줘"라는 음성 명령을 한다. 기기가 "온수를 출수할까요?"라고 확인 질문을 한다. 사용자가 "응, 출수해"라고 대답하면 출수하고, 이상이 감지되면 즉시 중단된다. 이 시스템은 물리적 버튼을 두 번 누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바로 이 가능성을 실제로 테스트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다.

산업 중심으로 발전하는 AI는 그 자체로는 방향이 없다. 그 기술이 장애인, 노약자,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쓰일 때, 기술의 혜택은 비로소 고르게 재분배된다. 그것이 기술이 사회 평등에 기여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온수 한 잔이면 충분하다.


[*] 추기 (2025. 2. 14.)

이 글을 게시한 후 KC 60335-2-21의 제정판부터 최신 개정판(2025년)까지를 직접 대조하여 확인했다. 본문에서 22.113항이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바로잡는다.

판본 22.113항
2007년 제정 도입
2012년 개정 (K 60335-2-21) 존재 (본문 p.10)
2015년 개정 존재 (한국 국가차이 p.24)
2022년 개정 삭제
2025년 개정 삭제 유지

22.113항("음용수 온수기는 이중 조작으로 온수가 토출되는 구조여야 한다")은 2022년 개정에서 삭제되었다. 현재 이 조항은 적용되고 있지 않다.

다만 규정이 삭제된 후에도 업계에서는 관행상 이중 조작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음성 제어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안전한 '조작'으로 인정하는 기준 자체가 아직 없다. 제조사가 음성 제어 온수 출수를 도입할 수 없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글은 LG전자 볼드무브(Bold Move)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TFE 리뷰] 두 LG 청소기는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었나? (1부) - 코드제로 A9S 6개월, 로보킹 AI 3개월 사용 후기 (사용법 영상 포함)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 들어가며


아기 도도가 태어난 후 청소는 저희 집에서 매우 중요한 루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청소는 시각장애인에게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꽤나 번거로운 작업인데요. 머리카락이나 작은 먼지는 잘 만져지지도 않고, 더군다나 장난감이 어지러히 널려 있는 바닥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해도 집기도 힘들죠. 결국은 자주 청소하는 수밖에 없는데 집안 구조가 복잡해지면 장애물들을 피해 청소를 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TFE 리뷰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먼저 1부에서는 저의 청소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준 두 가지 제품인 LG전자의 스틱청소기와 로봇청소기를 심층 해부해 보겠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사용 팁 영상도 올리니 많이 봐 주세요!


🧹🤖 두 청소기를 소개합니다!


먼저 제가 리뷰할 제품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올해 4월 중순, 너무나도 기다리던 LG 무선 스틱청소기가 저희 집에 들어왔습니다. 정식 제품명은 LG 코드제로 오브제컬렉션 A9S(이하 '코드제로').


 📷 이미지 설명: 무광 다크 그레이 색상의 스틱청소기가 올인원 타워 3.0에 거치된 전체 사진. 세로로 긴 타워형 거치대에 본체가 도킹되어 있으며, 타워 측면에 추가 흡입구들이 보관되어 있음. 흰 벽과 밝은 우드 패턴 바닥에 놓여 있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 가전의 느낌을 줌.


코드제로는 즉시 우리 가족의 최애 가전제품으로 등극했습니다. 제 18개월 된 도도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머리카락 줍기가 특기인데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이 발바닥에 느껴지면 저는 반사적으로 코드제로를 거치대에서 꺼내 듭니다.

코드제로는 250W의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하는데요, 청소는 순식간에 끝나고, 올인원 타워가 알아서 먼지를 비우고 UVC 살균 기능으로 필터 내 미생물까지 깔끔하게 제거해 줍니다.


두 번째 제품은 7월 말에 설치한 로봇청소기입니다. 정식 제품명은 LG 코드제로 AI 오브제컬렉션 로보킹 올인원 프리스탠딩(이하 '로보킹 AI').


 📷 이미지 설명: 베이지/크림 화이트 색상의 로봇청소기가 올인원 스테이션에 도킹된 전면 사진. 둥근 원반 형태의 로봇청소기 본체가 허리 높이 정도의 네모난 스테이션 하단에 들어가 있음. 전체적으로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밝은 색상으로 인테리어에 자연스럽게 조화됨.


로보킹 AI는 바닥 청소를 완전히 자동화해 주었습니다. 처음엔 '육아하는 집에 로봇청소기는 무용지물'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완전히 기우였더라고요.

로보킹 AI는 장애물을 매우 잘 피해다닙니다. 특히 한 주에 한 번씩 아기 매트를 모두 걷어내고 집안 전체를 청소할 때 진가가 드러나는데요. 물걸레까지 사용해서 로보킹 AI가 바닥을 닦는 동안 저는 마음 놓고 다른 집안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도도가 로보킹 AI를 졸졸 쫓아다니며 "찡찌기"라고 외치는 것을 보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코드제로와 로보킹 AI 모두 올인원 시스템입니다. 스테이션과 타워가 가구처럼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아들고, 청소기는 항상 같은 자리에 정돈되어 있죠. 발에 물건이 채이는 것이 무척 신경 쓰이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이것도 무시 못할 장점이랍니다.

그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게요.


🧹✨ 청소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코드제로 A9S


청소기 성능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사양은 흡입력입니다. 2023년형 코드제로 A9S의 흡입력은 250W입니다. 여기서 W(와트)는 모터의 출력을 나타내는 단위이고 높을수록 강력한 흡입력을 의미하는데요. 전작 시리즈인 A9 시리즈가 140W였던 것을 생각하면 100W 이상 향상되면서 사용자 만족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지표인 본체 무게는 2.47kg으로 시장 최경량 수준입니다. 배터리는 2개가 제공되어 사용 시간이 최대 120분에 달하는데, 일반적으로 배터리 1개만 사용하더라도 60분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코드제로의 특장점은 바로 이 강력함과 가벼움의 조화입니다. 250W 흡입력은 도도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뻥튀기 부스러기는 물론 웬만한 먼지는 다 빨아들이고, 2.47kg은 한 손으로도 가볍게 들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저는 한 손으로 청소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벽이나 가구를 짚으면서 청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사용하기에도 부담 없는 무게입니다.

이에 더해 흡입구(헤드)도 큰 몫을 하는데요. 단순히 걸레판을 부착하는 것을 넘어 자동으로 물이 공급되고 고온 스팀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팀 기능을 간략히 설명하면, 물통에 물을 채우고 스팀 배터리를 장착하면 최고 100도의 고온 스팀으로 바닥의 기름때나 굳은 때를 제거해 주는 기능입니다. 거의 상업용 공간 청소 효과를 낸다고 보시면 됩니다. 바닥 위생이 특히 신경 쓰이는 육아 가정에 유용한 기능이죠.

마지막으로,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올인원 타워 3.0의 유용성인데요. 단순한 거치대가 아니라, 자동 먼지 비움, 배터리 2개 동시 충전, UVC LED 살균 기능을 갖췄고, 스팀 물걸레 기능을 위한 스팀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 베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청소기를 올인원 타워에 거치하면 자동으로 먼지통이 비워지고 충전이 시작됩니다. 12시간 주기로 약 2시간 동안 UVC LED가 자동으로 작동해 먼지 봉투 안에 있는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가 증식할 수 없게 깔끔하게 살균합니다. 타워 양쪽 문을 열면 다양한 흡입구를 보관할 수 있어 정리도 간편합니다.

코드제로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다른 LG 제품과 달리, 본체에서 버튼 조작과 LG ThinQ 앱의 음성 안내가 연동되어 있지 않다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 워시타워 같은 경우 본체에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LG ThinQ 앱에서 어떤 세탁 코스가 선택되었는지 음성으로 알려줍니다. 그런데 코드제로는 본체에서 버튼을 눌러도 설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청소기 사용 자체에 큰 지장을 주진 않지만, 이런 세세한 연동이 초기 사용법을 익히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더라고요.

전반적으로, 코드제로는 알고 보면 사용법이 간단한데 물통 사용법, 스팀 배터리 탈부착, 올인원 타워 사용 등을 익숙하게 하려면 약간의 학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어요! 헷갈릴 만한 사용법은 아래 영상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이 있다 보니 코드제로는 사용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퍼포먼스가 나와 주면서 거기에 유용한 기능들을 배워가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죠. 코드제로 덕분에 청소기 돌리기가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집안일에서 부담 없고 즐거운 작업으로 바뀌었어요. 청소를 마치고 올인원 타워가 먼지통을 비우는 시원한 소리를 듣자면 제 가슴도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 스스로 학습하는 로보킹 AI의 진화


로보킹 AI는 2024년 8월에 출시된 LG의 프리미엄 로봇청소기입니다. 사실 딱 10년 전에 초기작인 LG 로보킹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요. 윗면에 터치 버튼이 많아 오조작이 잦았고 4년여 전부턴 배터리 수명이 급격히 줄어 더 이상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로봇청소기에 대한 설렘과 걱정이 반반이었는데 막상 사용해 보니 그 사이 많은 발전이 있었더라고요.

먼저 흡입력은 최대 10,000Pa입니다. Pa(파스칼)는 로봇청소기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위로 공기 압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센서는 라이다(레이저로 거리를 측정하는 센서), RGB 카메라(색상 정보를 인식하는 카메라), 3D 센서(입체적인 공간 정보를 파악하는 센서)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물걸레는 회전형 2개로 분당 약 180회 회전하고, 카펫 위를 청소핧 때는 물걸레가 9mm 자동으로 들어올려집니다. 배터리는 5,200mAh로 최대 3시간 사용 가능한데 주변 사례를 보니 50평대 아파트 청소에도 한 번 충전으로 넉넉하게 청소를 완료하더라고요. 올인원 스테이션은 코드제로 A9S와 마찬가지로 자동 먼지 비움 기능이 있고, 이에 더해 물걸레 자동 세척·건조, 전용 관리제 자동 투입 기능을 갖췄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보킹 AI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물걸레 청소 기능과 센서 성능이었습니다. 먼저, 물걸레 기능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 값을 한다고 느꼈는데요. 저희 집은 마루바닥이라 물 공급량을 '중'으로만 설정하고 사용하고 있는데 청소 후 바닥이 전체적으로 깔끔해지는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청소가 끝나면 스테이션에서 자동으로 물걸레를 세척하고 열풍으로 건조해 주어서 청결하게 관리할 수 있고요. LG가 개발한 전용 관리제가 자동 투입돼서 매번 걸레를 빨아줘야 하는 부담도 없습니다. 다만 주기적으로 물통을 갈아주고 걸레판도 세척해줘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일이 늘어나는 부분도 있네요. 그럼에도 청소 후 바닥이 빤들빤들해지는 걸 보면 전혀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센서 성능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라이다 센서, RGB 카메라, 3D 센서 조합으로 가구나 벽은 물론 작은 아기 장난감과 옷가지도 잘 피해다니더라고요. 무엇보다 사람을 잘 인식하고 회피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한 번은 집에 손님이 와서 좁은 주방에서 성인 4명이 왔다갔다 하는데도 로보킹 AI가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고 잘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4개의 정밀 센서가 높낮이를 민감하게 감지해 현관이나 화장실에서 떨어지는 일도 없고요. 10,000Pa의 흡입력은 타사 제품과 비교해도 아쉽지 않은 수준이고, 소음은 60-70dB 수준으로 크게 거슬리지 않습니다.

자율 주행 능력은 시간이 가면서 나아지는 걸 확인했습니다. 처음에는 특정 구역에만 오래 머무르고 충전대로 복귀하지 못하는 등 다소 답답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그런데 인내심을 갖고 10회 정도 사용하고 나니 집안 구석구석을 효율적으로 청소하고, 이젠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스테이션까지 정확히 찾아 들어갑니다. 아예 청소 예약을 걸어두고 주기적으로 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아마도 주행 능력 향상은 초기 매핑 정보를 바탕으로 라이다 센서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로 도면을 업데이트한 결과로 보입니다. 제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결과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결과적으로 주행 능력은 저희 집에 육아 용품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매우 좋다고 느껴집니다.

이렇듯 로보킹 AI의 강점은 발전 가능성입니다. 2부에서 설명하겠지만, 특히 로보킹 AI의 기능을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선 LG ThinQ 앱 사용이 필수적인데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편의성과 유용성이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현재 저는 프리스탠딩 모델을 사용하고 있지만, 추후 수도관 연결이 가능한 환경이 된다면 정수기처럼 자동 급배수 키트를 추가 설치하여 물통 관리 부담을 아예 없앨 수도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보안입니다. 다양한 카메라 기술을 사용하는 만큼 LG가 믿을 수 있는 프라이버시 보안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타 사에 비해 압도적인 이점입니다. 저희 집은 홈카메라도 이 보안 문제 때문에 국산 제품을 사용하고 있거든요. 프라이버시는 값으로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사용 초기에는 이동 속도가 다소 느리다고 느껴졌고, 흡입력 조절 같은 간단한 조작도 LG ThinQ 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보니, 청소기나 저나 서로에게 적응하기 전에는 다소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방 편집 기능 등 유용한 기능은 시각장애인 혼자 사용하기 어렵고 비장애인이라 해도 사용법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 기능의 존재조차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아무래도 LG ThinQ 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진입 장벽이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해 아래 로보킹 AI 사용법도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로보킹 AI를 총평하자면 '볼수록 매력 있는 로봇청소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로봇청소기는 여러 가전 중에서도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카테고리인데요. 그 점에서 한 번 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맞춤화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점, 즉 LG가 표방하는 'UP가전'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습니다.

✅ 나가며


오늘은 저의 육아 생활에서 청소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춰 준 LG의 두 청소기, 코드제로 A9S와 로보킹 AI를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리뷰해 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젠 결코 단순하지 않은 가전이 바로 청소기인데요. 이 리뷰가 청소기 구매를 고민하거나 사용법을 잘 몰라 헤매셨던 분들께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리뷰에서는 청소기를 시작점으로 해서 LG전자만이 가진 포용적 기술에 관해서 짚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가 가전에 대해 이렇게까지 덕질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LG는 정말 파면 팔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기업이더라고요.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포용적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오늘의 리뷰 요약

  • 코드제로 A9S는 구형 모델(140W)에서 250W로 100W 이상 향상된 흡입력과 2.47kg 경량 설계로 한 손 조작 가능함. 즉흥적 일상 청소에 최적화되어 청소를 즐거운 작업으로 만듦.
  • 올인원 타워 3.0은 자동 먼지 비움, 배터리 2개 동시 충전, 12시간 주기 UVC LED 살균(2시간)으로 관리 부담이 최소화됨.
  • 스팀 물걸레는 최고 100도 고온으로 바닥 위생에 효과적이나 급수통과 안심 스팀 배터리 사용법 익히는 데 시간 걸림.
  • 로보킹 AI는 10년 전 모델 대비 큰 발전. 10,000Pa 흡입력, 라이다+RGB 카메라+3D 센서로 작은 장난감과 사람까지 정확히 인식·회피함.
  • 회전형 물걸레(분당 180회)와 올인원 스테이션의 자동 세척·건조로 정기 대청소에 유용함. 다만 주기적인 물통 관리와 걸레판 세척 필요함.
  • 초기엔 특정 구역만 머물러 답답했으나 10회 사용 후 AI 학습으로 효율적 청소 경로를 구축함. 초기 LG ThinQ 앱 진입 장벽은 개선 필요함.
  • LG는 UP가전 전략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지속, 프라이버시 보안 우수, 자동 급배수 키트 추가 가능 등 발전 가능성이 큼.



이 글은 LG전자 볼드무브(Bold Move)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TFE 리뷰] 카카오가 만든 점자 달력 - 접근 가능한 아날로그 달력의 의미 (달력 소개 영상 포함)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 글 하단에 달력 소개 영상이 있습니다.


들어가며

 

12월 초, 카카오에서 온 우편 봉투를 열었다. 점자 달력이 들어 있었다. 여느 우편처럼 우선 급한대로 뜯자마자 내용물만 확인하고 책상 한 켠에 올려놓았다. 시각장애인인 내게 달력이란, 연말마다 돌아오는 의례적 물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 기관이나 단체에서 받는 달력들은 대개 머지않아 종이쓰레기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틈틈이 달력을 꺼내보며 만듦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있었다. 카카오 점자달력은 곳곳에 숨겨진 매력이 있다. 그에 관해서는 이 글 후반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달력이 내 내면에 일으킨 작은 파문에 관해 얘기해 보려 한다. 달력이 내 책상 위에서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한다는 것의 의미,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점,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의 가치, 왜 하필이면 카카오라는 회사가 이 사업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 등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물리적 존재가 만드는 리추얼

 

달력이 내 책상 위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책상에는 컴퓨터와 점자정보단말기와 같은 전자제품이 많아 달력을 위한 물리적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로 27cm, 세로 20cm, 두께 8cm라는 만만치 않은 크기의 탁상형 달력을 수용하기에 내 작업 공간은 너무 비좁았다. 처음에는 접힌 채 서류 더미 사이에 끼워 두었다가, 내가 많이 오가는 주방 아일랜드 위로 옮겼다가, 다시 책상 위 손이 닿는 위치로 옮기는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이 과정은 조금 귀찮았지만 묘하게 달력에 대한 애착을 심어 주었다. 달력을 향해 일부러 자리를 비워주는 행위가 어쩐지 달력과 나 사이에 작은 관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후에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손을 뻗어 달력을 만지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점유한 달력이 주는 효과는 예상밖으로 컸다. 달력이 항상 그 자리에 있음으로서 마치 내 작업 흐름에 시간을 부여하는 느낌을 준 것이다. 눈에 자주 띈다는 것-내게는 손에 자주 걸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것에 관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의미니까. 책상 위에 달력의 공간을 마련한 것은 그래서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내 작업 흐름에 얼마간의 변화를 주는 행위였다.

문득 ‘시각장애인에게 달력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느리지만 깊이 있는 촉각의 경험, 색다른 방식의 시간 기록, 그리고 그 뒤에 ‘정보접근권’이라는 자못 해묵은 이슈까지. 이 달력이 내 삶에 던진 화두는 연말마다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종이 달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느리지만 깊이 있는 ‘촉각’의 경험

 

촉각으로 달력을 보는 일은 분명 번거롭다. 일정이 궁금하면 캘린더 앱을 열거나 심지어 음성 명령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굳이 페이지를 넘기고 손끝으로 날짜를 더듬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나 또한 초기에는 이 달력의 존재를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촉각으로 날짜를 확인하고, 촉각 스티커를 붙이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오히려 이 느린 과정의 흡인력을 느끼게 되었다. 손끝으로 칸을 따라가며 날짜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마치 시간을 손으로 더듬어 짚어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몇 번의 스와이프나 탭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직접 ‘만지고’ 확인하는 경험이 머릿속에 사색의 틈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점자의 질감은 그 사색에 구체적인 감각을 더해주었다.

특히 촉각 스티커를 붙일 때가 가장 인상적이다. 디지털 캘린더에서는 몇 초 만에 일정을 추가할 수 있지만, 점자 달력 앞에서는 “여기에 붙일까, 저기에 붙일까?”, “이 모양을 붙일까, 저 모양을 붙일까?” 하고 손끝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덕분에 일정에 대한 기대감이나 부담감도 더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귀로 한번 휙 듣는 것과는 다른, ‘천천히 스며드는 몰입’이 촉각 달력을 통해 가능해졌다.

카카오 점자달력은 단순한 정보 도구를 넘어, 시각장애인인 내가 손끝으로 날짜를 확인한다는 행위 자체를 특별한 경험으로 바꾸어 놓았다. 손끝으로 날짜를 찾고, 때로는 아무 메모도 없는 빈 칸을 더듬으며 지난 하루나 곧 다가올 일을 천천히 떠올리는 시간. 이 느린 동작은 단순히 스케줄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닌, 일상의 작은 의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캘린더 앱을 열고 일정을 확인하던 것보다는 훨씬 느린, 그래서 오히려 더 럭셔리한 습관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 기록에 대하여

 

한편, 나는 2020년부터 4년 넘게 ‘Eat That Frog’라는 이름의 엑셀 파일에 매일 일지를 기록해 왔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습관 형성과 관련된 책의 제목이자 ‘개구리를 꼭 먹어야 한다면 아침에 먹어라.’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서 따 온 이름의 이 엑셀은 처음에는 중요한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메모장이었다. 달력의 형태로 손수 만들었던 이 일지에 나는 빼곡히 하루의 일과를 정리해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미래 일정보다도 과거의 일을 기록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되었다. 자기 성찰을 돕는 ‘사색의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쌓이니 내 삶의 패턴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물이 되었다.

그런데 2024년 4월, 아들 도도가 태어나면서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시간이 줄었다. 게다가 가족이나 주변인들과 일정을 공유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구글 캘린더로 넘어갔다. 디지털 환경에서 실시간 협업과 공동 관리를 하기에는 구글 캘린더만큼 편리한 도구도 없었다. 구글 캘린더는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PC에서는 단축키 몇 개로 일정을 저장할 수 있었고, 네이버 클로바나 구글 홈과 같은 AI 스피커에서는 음성으로 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나 한소네 6과 같이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와 실시간으로 매끄럽게 연동되었다. 엑셀도 디지털 도구이긴 했지만 개인적 기록에 초점이 있었다면 구글 캘린더는 완전한 웹 기반으로 주로 현재나 가까운 미래의 일정을 주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도구로 매우 유용했다.

엑셀과 구글 캘린더를 사용하면서 깨달은 것은 시간을 기록하는 도구에 따라 시간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엑셀 일지가 과거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자기 성찰을 가능하게 했다면, 구글 캘린더는 나의 현재를 나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주변인과의 공동의 자원으로 보게 했다. 그렇다면 점자 달력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에 관해 어떤 태도를 갖게 할까? 아직 사용한 지 2주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효용성을 여기서 미리 뭐라고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간을 조금 더 소중하게 다루도록 한다는 점이다. 느리지만 집중적인 ‘기억의 의식’은 날짜 칸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과 같은 단순한 작업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했다. 그 효과는 2025년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왜 하필 카카오였을까?

 

그렇다면 이 점자 달력을 만든 것이 왜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가 아니라 카카오였을까? IT기업이면서도 디지털 플랫폼의 최전선에 있는 카카오가 굳이 점자 달력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기술의 잠재력과 한계를 가장 잘 인지하는 이들이 내놓은 역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해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카오는 오래전부터 접근성을 위한 기술 투자에 힘써 왔다. 2013년부터 카카오는 QA 단계에서 접근성 전담 조직을 운영했고, 2018년부터는 자회사 링키지랩의 접근성팀을 통해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2022년 4월에는 국내 IT 기업 최초로 '디지털 접근성 책임자(DAO)' 직책을 신설하면서 김혜일 링키지랩 접근성팀장을 선임했다. 이후 카카오톡에서는 저시력 사용자를 위한 고대비 테마 제공, 이모티콘에 대체 텍스트 추가, 이미지/동영상 파일 저장 시간 음성 출력 기능 등을 잇따라 구현했다. 카카오맵은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 정보를 안내하고 있고, 지하철역 승강장의 단차 정보까지 제공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같은 맥락에서 도입된 카카오톡 지갑 인증서의 접근성 인증 마크 획득은 금융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던 장애인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준 대표적 사례이다. 이처럼 카카오는 ‘배리어 프리 이니셔티브’라는 이름 아래 전사적 차원의 접근성 개선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디지털 접근성 개선의 프런티어에서 일하는 조직이었기에 어쩌면 디지털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카카오는 오히려 아날로그 방식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감각 경험을 확장하는 용감한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사용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카카오 점자달력은 한정판으로 출시되어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허니버터칩’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접근성이란 결국 사람의 감각과 습관, 그리고 정보가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카카오가 새로운 디지털 캘린더 접근성 기능을 출시하는 대신 점자 달력을 제작하게 된 것은 ‘기술을 통한 해결’이 아니라 ‘기술을 넘어서는 해결’을 지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일종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다시 카카오의 코어 기술을 더욱 강화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요컨대, 디지털(正)의 성과와 아날로그(反)의 감각적 이점을 융합해 ‘합(合)’을 도출함으로써, 카카오는 접근성이라는 본질적인 과제를 더욱 입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기술을 넘어서는 해결’은 단순히 새로운 제품 하나를 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용자 중심의 문제 해결력과 기업 내부의 기술력 모두를 성장시킬 수 있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카카오 점자달력, 설계부터 배포까지의 세밀함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카카오 점자달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설명하겠다. 카카오에서 발표한 ‘2025 카카오 점자달력 제작기’를 토대로 한다.

카카오는 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많은 기획 회의와 100번이 넘는 테스트, 다양한 시각장애인 사용자와의 상담 과정을 통해 점자 달력을 준비했다고 한다. 제작팀은 우선 시각장애인들의 실제 사용 패턴에 주목했다. 시각장애인용 달력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인 점자 외에도, 저시력자를 위한 큰 글자와 4.5:1의 명도 대비를 적용했다. 국내 등록 시각장애인 중 점자 사용이 가능한 비율이 9.6%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에 달력을 받아 본 사람들은 저시력자는 물론 비장애인도 ‘숫자가 커서 시원시원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기에 더해 각 페이지 하단에는 손끝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영역 구분선을 넣고 그 아래 최대 8개의 기념일을 모아서 표시했다. 매 주 토요일 칸 옆에는 음력 날짜를 함께 표기했다. 각 페이지 뒷면에는 촉각으로 인식 가능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배치했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촉각으로 표현해 낸 것도 신박한 아이디어였지만 기념일과 음력 날짜 정보를 확인하기 편한 위치에 제공한 것은 이 달력이 디자인뿐 아니라 실용성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제작팀은 달력의 정보 구조도 세심하게 설계했다. 휴일 모아보기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맨 앞에 배치하고, 월별 색인을 통해 원하는 페이지를 빠르게 찾을 수 있게 했다. 휴일 모아보기 아이디어는 사용자 인터뷰에서, 월별 색인 아이디어는 카카오 내 디자인 조직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접근성 팀에서 이 달력의 디자인을 위해 얼마나 다양한 출처에서 의견을 수렴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특징은 개인 일정을 기록할 수 있는 촉각 스티커다. 사용자는 점자 달력 맨 뒤에 있는 다양한 모양의 촉각 스티커들을 떼어와서 날짜 주변에 붙여 사용할 수 있다. 직접 메모를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모양과 숫자로 구성된 스티커로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스티커는 시각장애인이 일정을 표시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 이 달력을 일방적인 정보 매체가 아닌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카카오의 달력 배포 과정 역시 단순한 전달을 넘어섰다. 카카오 디지털 접근성 조직의 담당자들이 전국 14개 맹학교에 직접 방문해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맹학교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유관 기관을 통해 달력을 전달했다. 나 역시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소속 시각장애인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이 달력을 받았다. 한정판으로 3,000부를 제작하였는데 이렇게 시각장애 학생 및 교사들에게 전달하고 나니 순식간에 달력이 동났다고 한다. 달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달력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소통의 매개체가 되었고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유독 이 달력이 시각장애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사용자의 필요를 고려한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기능보다는, 실제 사용 과정에서 마주치는 작은 불편함까지 해소하려 했던 노력이 달력 곳곳에 배어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우리의 필요를 귀 기울여 들어준 누군가의 세심한 배려처럼 느껴진다. 반갑게도, 카카오가 점자 달력 보급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수집해서 더 나은 버전을 준비한다고 하니. 내년에는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받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맺으며

 

처음엔 ‘그냥 종이 달력 하나 받았을 뿐인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책상 한 켠을 차지한 이 달력은 곧 ‘시각장애인에게 달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느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이 주는 편의와 속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지만, 동시에 물리적 존재가 선사하는 깊은 몰입과 사색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카카오 점자달력은 IT 기업이 아날로그를 활용해 보여 준 하나의 역설적 해법이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위한 도구이고 반드시 디지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지는 개개인의 감각과 습관에 달려 있다. 스티커를 붙이고, 디지털 캘린더를 공유하고, 손끝으로 날짜를 더듬는 모든 방식이 존중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정보접근권’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을 것이다.

달력 표지에는 “카카오는 우리의 소중한 순간을 이어 일상의 흐름을 만듭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을 연결하는 것(connecting the dots)’과도 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 달력에 촉각 스티커를 붙여 가며 내 삶의 순간들을 이어간다면 연말에는 하나의 아름다운 궤적이 완성되지 않을까. 그 설렘에 벌써부터 2025년 말이 기다려진다.


* 카카오 점자달력 소개 영상

[팁] 웹 탐색할 때 센스리더가 불필요한 것 읽지 않게 설정하는 방법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윈도우 PC에서 센스 리더로 웹 탐색을 하다 보면 웹 페이지에 있는 콘텐츠의 구조나 실시간으로 바뀌는 내용에 대해서 친절하게 모두 알려주는데요. 이러한 정보는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웹 페이지에 적용된 HTML 태그나 아리아-라이브(ARIA-live) 속성을 센스 리더가 인식해서 음성으로 출력해주는 것입니다. 이 정보가 있으면 내용을 순차적으로 다 확인하지 않더라도 웹 페이지의 구조와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가끔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내용까지  읽어주는 바람에 오히려 내용 파악에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요. 자주 방문하는 웹 사이트에서 프레임이나 목록 정보를 계속 출력한다든가,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있는데 배너에 표시되는 헤드라인 기사 제목이 읽던 내용을 끊고 들어와서 출력되는 경우에 오히려 성가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 센스 리더 프로페셔널 V 8.52 버전 기준입니다.

  • 웹 페이지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컨트롤+쉬프트+F9 키를 눌러 가상 커서 설정 대화상자를 호출합니다.
  • 설정(S) 버튼을 눌러 센스 리더가 읽는 항목의 목록을 엽니다.
  • 여기서 스물세 개의 항목별로 읽기 토글 또는 방식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새 페이지 자동 읽기, 숨긴 내용 읽기, 프레임 시작·끝 읽기, 목록 시작·끝 읽기, 목록 항목 개수 읽기, 변경 내용 자동 읽기 등 항목별로 읽게 할 것인지, 읽지 않게 할 것인지를 자신에게 맞게 스페이스 바로 선택합니다.
  • 확인 버튼을 눌러 설정을 저장합니다.


저는 이 중 목록 시작, 끝 읽기, 목록 항목 개수 읽기, 변경 내용 자동 읽기는 해제해 놓고 사용하는데요. 

간단히 설명하면 목록은 웹 페이지에서 여러 항목을 순서대로 나열할 때 사용하는 HTML 태그(`<ul>`, `<ol>`, `<li>`)와 관련된 정보입니다. 예를 들어, 쇼핑몰에서 상품 목록을 볼 때 각 상품의 이름과 가격 앞에 "목록 시작", "1/3", "2/3"와 같이 읽어주는 것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변경 내용 자동 읽기는 웹 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내용이 바뀌는 경우, 즉 아리아-라이브 속성이 적용된 영역에서 변경된 내용을 자동으로 읽어주는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채팅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오거나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바뀌는 경우 해당 내용을 즉시 읽어줍니다. 이 기능을 해제하면 변경된 내용을 수동으로 확인해야 하지만, 웹 페이지 탐색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 구글 문서나, 구글 시트와 같은 구글 앱을 사용할 때는 변경 내용 자동 읽기를 반드시 선택하셔야 합니다. 구글 앱에서 스크린 리더 지원 모드를 사용하기 위해선 센스리더가 아리아-라이브 속성을 읽어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센스 리더의 설정을 변경하면 웹 탐색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는 걸러내고 필요한 정보만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설정을 조정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