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AI 디지털교과서 사업, 현실과 이상 사이의 딜레마

교육부가 AI 디지털교과서를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야심찬 계획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 미국 거대 테크기업들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게 AI 기술인데 교과서를 만드는 데 AI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술력도 자금도 부족한 교육부가 어떤 근거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과서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고, 기술 업계 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친다. 냉정하게 말해 이번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년에 챗GPT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AI" 교과서가 나오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AI가 진짜 AI가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AI 사랑을 보며 나는 이명박의 '자원외교'가 떠오른다. '뭔가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접근하다가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 교육행정기관과 출판사 몇 곳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문제는 그 모든 기관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질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들이라는 사실이다.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교과서를 웹에 구현해야 한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등 웹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해 사용자가 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출판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 전문성을 요구하는데 기존 출판사들에게는 생소한 분야이다. 둘째,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가 사용되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 인증을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은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고도의 기술적 조치와 법적 대비가 필요하다. 셋째, 보편적 학습 설계(UDL) 원칙을 따라 개발해야 하고 웹 접근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다양한 학습자의 요구를 고려하고 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모두 고난도의 과제이다. 각각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며, 이를 모두 통합하여 교과서라는 형태로 구현해내는 것은 기존 교과서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다.

당연히 출판사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여러 에듀테크 기업들이 합류했지만, 역부족이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려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데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거의 없고, 제시한 시한은 너무 짧다. 모두 2024년 말에 끝내야 하는 일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웹 기반'이라는 점이다. 웹은 '접근성 표준'이 명확해서 개발자들에게 접근성 관련 요구사항을 전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는 그동안 장애학생과 장애인 교원의 니즈를 무시하고 비장애인 중심으로 개발되어 온 교과서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다.

나는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을 통해 이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장교조는 교육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과의 협의를 통해 개발 가이드라인에 접근성 관련 내용을 반영했고,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이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 중이다. 이제 곧 수십 명의 장애인 교원들이 발행사들을 직접 만나 접근성 관련 자문을 하게 된다.

이 사업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교육부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혁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혁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교육 주체 당사자들에게 공감과 설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교육부는 시간에 쫓긴 나머지 이 중요한 과정을 건너뛰고 있다.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일정과 예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대로 추진할 경우 이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제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기술 혁신과 교육의 본질, 포용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최적의 균형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 기술의 발전은 ‘교육과 기술의 최적의 균형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교육 주체들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나는 이 기회가 단순히 정치인의 치적 쌓기가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더 포용적이고 접근성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는 모멘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방향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당장 내년에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시작하지 못하더라도 이 사업을 통해 미래 교육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더 나은 교육적 선택이라고 믿는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출석하고 왔다.

교육지원청에서 열린 교권보호위원회에 출석하고 왔다. 내가 오랫동안 가르친 학생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나에 대한 심각한 모욕적 발언을 했고, 그 내용에는 차마 언급할 수 없는 장애 비하 발언이 포함되어 있다. 심야 시간에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발언이라 교육활동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지만 내 해석은 그렇지 않다. 나는 교권보호위원회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위 징계인 전학을 요구했다.

이 사건을 알고 나서 인권위에 전화 상담을 했을 때 인권위 진정을 하더라도 충분히 장애인 차별로 인정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가장 좋은 건 교육지원청에서 적절한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리라. 교육 당국의 자정작용이 인권위나 사법기관을 거치지 않아도 될 만큼 견고하기를….

육아와 시험문제 출제, 장교조 일 등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일들 때문에 이런 일에 감정을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당연히 유정에게도 이전까지는 얘기하지 않았고 오늘 회의에 출석하고 돌아와서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얘기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 피해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어서 자꾸 회피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장교조 위원장으로 여러 곳에서 장애인교원이 겪는 고충을 얘기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느낀 것은 피해를 당하는 것과 ‘피해자’가 되어서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되어 내게 벌어진 일을 곱씹고 관련 규정을 찾아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나마도 장교조 활동 경험이 아니었다면 마음이 더 약해졌을지도 모른다. 장교조 위원장인 나도 막상 이런 일을 겪으면 회피하고 싶은데 다른 장애가 있는 선생님들은 어떨지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건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중대한 잘못에 대해서 면책해 준다면 그것이 더 반교육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제대로 지게 만들려면 피해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피곤하다. 이 글을 쓰는 것도 피곤하다. 내게 벌어진 일을 되새기는 게 무척 괴롭고, 소중한 시간을 이런 데 쓰는 게 아깝다. 그래도 이 또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도 ‘장애인교원’으로 살면서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면 감내하겠다.

도도 아빠의 성장 일기 - 출산 후 60일 동안 우리 부부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 5가지

도도는 생후 60일이 되었습니다! 생후 1개월이 지나면 신생아 단계를 벗어나 영아로 분류되는데요. 정말 체격도, 운동 능력도, 옹알이의 복잡성도 신생아였던 한 달 전과는 확연히 다르네요.

그런데 지난 60일은 도도만큼이나 유정과 저에게도 ‘새로운 세상’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하루를 새로운 루틴으로 채우고 시간을 바라보는 익숙한 관점도 버려야 했죠. 내일이나 다음 주가 아니라 30분 또는 2시간만 내다보며 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반복된 일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이 정도의 급격한 변화는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정말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이 변화무쌍한 시기를 별일 없이 잘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출산 후 60일 동안 우리 부부가 안정적으로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5가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산후조리를 도와주는 각종 지원 제도

저출생 대책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다양한 출산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데요. 특히 이 시기에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 세 가지는 첫만남이용권,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산후조리경비 지원입니다.

  • 첫만남이용권은 출생 신고와 함께 정부에서 200만 원을 바우처 카드에 바로 입금해 주는 쿨한 제도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데요. 저희는 전액 산후조리원 비용에 보탰습니다.
  •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사업은 시도에서 운영하는 사업으로 전문 건강관리사가 가정을 방문해 산후조리와 신생아 돌봄을 도와주는 서비스입니다. 전문 교육을 받은 건강관리사님이 산후조리원 퇴소 후에 2주~3주 동안 집에 오셔서 직접 산모와 신생아를 모두 케어해 주시는 서비스로 정부에서 운영하는 베이비 시터 제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시도에서 인증받은 업체를 통해서 전문 교육을 받은 관리사님 오시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 산후조리경비 지원 사업은 시군구에서 지원하는 사업으로 산후조리원 이용비, 마사지, 요가, 운동 비용, 영양제 비용 등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원 금액은 5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로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요긴합니다. 저희의 경우, 건강관리사 자부담금 일부와 유정의 헬스장 PT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제도들은 모두 출산 직후 산후조리와 신생아 케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사용 가능 기간이 다르지만 대부분 60일 이내에 소진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산후조리원에 3주를 머물고, 가정 방문 건강관리사 지원을 3주 신청해서 총 6주 동안 산후조리 서비스를 받았는데요. 돈으로 따지면 550만 원 정도 되는 거금이었지만 정부 지원으로 실제로 부담한 금액은 3분의 1 수준인 175만 원 정도였습니다(조리원과 건강관리사 지원 비용은 업체와 기간에 따라 다르고 지원금 규모도 부부의 소득 합산에 따라 달라집니다).

2. 남편의 배우자 출산 휴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남편의 휴가가 10일 있습니다. 이 휴가를 산후조리 서비스와 겹치지 않게 사용하면 산모 입장에서 최대 8주(약 60일)까지 인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산후조리 관리사님들보다는 서툴지만 남편이 24시간 함께할 수 있으면 산모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요. 특히 아빠도 아기와 가까워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는 휴가를 쓰는 동안 도도가 생후 50일을 맞이했는데 목도 조금씩 가누기 시작하고 폭풍 성장을 해서 매일 도도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크더라고요.

하지만 이러한 지원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아기를 키워 보니 아기를 제대로 돌보면서 부모의 일상생활도 어느 정도 유지하려면 어른 셋은 상시적으로 붙어 있어야 하더라고요. 이런 정책적 지원조차 없던 과거에는 어떻게 양육을 했을까요? 아기를 키우게 되면서 요즘 부쩍 어릴 적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3. 육퇴 후 맥주 한 잔

저와 유정은 맥주를 마시면서 가까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맥주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신을 준비하면서부터 유정은 알코올을 일체 입에 대지 않았는데요. 덩달아 저도 음주량이 줄어서 더욱 건강한 삶을 살 수는 있었지만 하루를 마치고 유정과 함께하는 맥주 한 잔이 그리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5월 초, 드디어 유정이 1년 가까운 금주를 깨고 육퇴 후 맥주 한 캔을 함께 나눠 마셨습니다. 그때 유정이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마침 치맥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다른 간식도 함께 먹자고 권하니 “성스러운 치맥”에 다른 음식을 섞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 후에도 종종 도도가 잠들었을 때 한 캔을 나눠 마시곤 하는데요. 날씨도 더워지는 터라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참고로 유정은 그사이 무알코올 맥주조차 입에 대지 않았는데 저는 종종 무알코올 맥주로 아쉬움을 달래곤 했습니다. 조리원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밤 유정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홈런볼에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던 기억은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4. 음악

음악은 맥주와 더불어 우리 부부의 연애와 결혼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입니다. 조리원에도 아마존 에코닷을 들고 가서 틈만 나면 음악을 틀어놓고 도도와 함께 들었는데 모자 동실을 하면서 들었던 존 레넌의 ‘Oh My Love’는 여전히 우리 부부의 육아 18번입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도도와 함께하는 ‘베이비 라커스 긱’에서 도도에게 라이브로 들려주기도 했죠.

5.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가족과 친구들

지난 60일 동안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가족과 친구들이었습니다. 1년에 몇 번 보지 못했던 가족들을 1주일이 멀다하고 만나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이 선물을 보내주거나 집에 직접 찾아와 도도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평생 살면서 이 정도의 관심을 받아 본 적은 단연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모든 분들 덕분에 유정은 산후우울증을 겪지 않았습니다. 저도 두려움을 이기고 아빠로서의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난 60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도도의 출산을 주변에 알리면서 가족과 지인들이 해 준 모든 말이 저에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옮겨 봅니다. 아들을 이미 다 키운 가까운 형님이 해준 말이었습니다.

“아기 키우는 것 아주 힘들지. 그런데 힘든 건 다 잊어버린다. 좋은 기억만 남고 다 사라져.”

이 말을 들으며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습니다. 육아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마저도 한 발 떨어져 관조할 수 있는 마음. 아직 저는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갖지는 못했지만 그 형님의 말처럼 도도를 키우며 긴 시선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까지 출산 후 60일 동안 우리 부부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것 다섯 가지를 꼽아 보았는데요. 출산하기 전에는 아기가 나오면 우리의 삶이 끝날 것처럼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직까지는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다는 느낌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몸은 바빠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충만한 삶. 그것이 도도가 우리 부부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 합니다. 도도의 작지만 큰 성장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이렇게 아빠는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앞으로도 종종 아빠의 성장 일기를 올려 보겠습니다!

사랑해, 도도야.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자! 😄

대체교과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엄마들이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교과서”

특별한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강북구를 기반으로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각장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 전시회였습니다. 놀랍게도 전시된 작품은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교과서와는 다른 교과서. 바로 대체교과서입니다.


혹시 대체교과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시각장애 학생에게는 점자책이나 확대교과서 같이 다른 형태의 교과서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국립특수교육원(이하 국특원)이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대체교과서를 17개 시도교육청을 대리해서 제작하고 있죠. 그리고 시각장애 교사들도 바로 그 대체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각장애 교사들은 일정 부분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문제는 저학년으로 갈수록 교과서에 글보다는 그림이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글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은 이미지를 통해 개념을 학습해야 하죠. 그런데 이미지를 점형으로 형상화하는 건 무척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기술입니다. 그래서 국특원이 제공하는 대체교과서는 이 이미지들을 대부분 말로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글을 몰라서 이미지가 수록된 교과서인데 그걸 다시 글로 설명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는 아이들이 중요한 개념들을 제대로 학습할 수가 없습니다. 참다못한 어머님들은 교과서를 새로 만들기로 하셨죠. 그렇게 탄생한 세상에 하나뿐인 ‘교과서’들이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시회에서는 다양한 시각장애 학생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점자 보도블록 따라 걷기, 시각장애인 스포츠 종목인 골볼 체험하기 등. 부모님들이 이 전시회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셨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이 전시회를 기획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대체교과서에 관해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시각장애 초등학생의 어머니인 임민지 님은 저에게 전시된 대체교과서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교과서들은 엄마들 입장에선 다시는 꺼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어요. 제대로 된 교과서가 없는 상황에서 너무 힘들게 만들었거든요. 하지만 언젠가는 세상에 꼭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들이에요.”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 저의 어머니는 저보다 먼저 점자를 배우셨죠. 그리고 제가 점자를 잘 쓰고 읽을 수 있도록 늘 옆에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나마 점자에 능숙한 교사들이 많은 맹학교에서도 부모님의 지원은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하물며 일반학교에 통합된 시각장애 학생들은 점자를 모르는 선생님들에게 점자책으로 배워야 하는 이중고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사도 볼 수 있고 학생도 읽을 수 있는 대체교과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2025년이면 새로운 교육과정과 함께 새로운 교과서가 도입됩니다. 하지만 또다시 부모님들이 직접 대체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제대로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우리 학교와 사회의 책임이 아닐까요?


이제는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들과 그것을 구매해서 학교로 보급하는 교육청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출판사와 교육청 모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상태에서 국립특수교육원이 수십 곳의 출판사에서 제작하는 수백 종의 교과서를 짧은 기간 내에 대체교과서로 제작하는 불가능한 일을 모두 떠안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글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글로만 설명된 교과서가 제공되는 불합리한 개발 구조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대체교과서가 있어도 선생님의 말에만 의존해서 공부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도 합리적인 형태의 교과서가 제공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전시회는 이번 주 일요일까지 하고 끝나지만 평등한 교육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 진정서 서명 & 공유: 임민지 님과 다른 부모님들이 함께 작성한 시각장애인 교과서 문제점 해결 진정서에 서명하고 주변에 공유해주세요. 여기를 눌러 서명 참여.


• 영상: 시각장애 학생 부모님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 대체교과서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 자막

지금 시각장애 학생 부모님들께서 자주 모임을 만드셨는데 그 자조 모임에서 준비한 전시회에 와 있습니다. 지금 제 옆에 펼쳐져 있는 것들은 일반 교과서들에 우리 시각장애인 저학년 어머님들께서 만드신 정말 독창적인 어떤 대체 교과서들이 있는데요. 지금 이렇게 노트의 점형 또는 촉각 자료로 이렇게 일일이 다 만드셨어요. 학교에서 나눠주는 대체 교과서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어머님들께서 직접 다양하게 지금 대체 자료를 만들어 주셨고 이렇게 넘겨보면 이렇게 점자를 배우는, ‘니은’ 모습인 것 같은데요. 이거는 이렇게 점형을 또 이렇게 스티커 같은 걸로 표현을 해 주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각장애 아이들을 위해서 대체자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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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료 전시 추천 : 시각장애 체험형 공감 <무얼 할 수 있겠어?> (~5/19) : 네이버 블로그

전맹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의 30일 육아 체험기 👶

도도가 세상에 나온 지 30일이 되었습니다! 🎉 원래 이 포스팅을 쓰기 시작한 건 5월 3일 밤인데 올리는 건 5월 5일 점심에서야 가능하네요~ 육아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ㅎ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로서 어려운 점 😓

예상대로 아빠로서의 역할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눈이라는 감각 기관의 도움 없이 소리와 촉각으로만 새로운 기능과 행동양식을 배운다는 건 정말이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간단하게는 아기를 안는 자세에서부터 분유를 타는 일까지 뭐 하나 자연스럽게 되는 일은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편안하게 안는 자세와 트림시킬 때 안는 자세가 다르고 젖병을 물리는 각도도 아이가 분유를 마시는 양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져야 합니다. 조리원에 있을 때 관리사님들의 팔 각도를 일일이 만져보고 실습해 봤지만 추가로 유정의 가이드를 수도 없이 받고 나서야 아기의 머리와 허리가 일직선이 되는 각도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젖병을 물리는 일은 아기의 입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한 팔로 아기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젖병을 들다 보니 아이가 얌전히 입이 벌려줄 때는 그나마 쉽게 입의 위치를 찾을 수 있지만, 마구 몸부림을 칠 때는 정확히 젖병을 가져다 대주는 것부터가 어려웠습니다.


육아 과업별 난이도 분석 📊

아빠가 할 일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젖병을 끓는 물에 소독하고 제때 꺼내주는 일(이걸 '열탕 소독'이라고 부르더군요)은 조심스럽게 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면 젖병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육아 과업은 다양한데요. 오늘은 육아 30일 동안 전맹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 입장에서 해 본 일을 중심으로 과업의 난이도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 안아주기 (난이도: 하): 처음에 안전한 자세 교육이 필요하지만 연습을 통해 자연스러워집니다.
  • 젖병 물리기 (난이도: 중): 입 찾기, 마시는 속도에 따라 각도 기울이기 등 섬세 작업이 필요합니다.
  • 젖병 씻기 (난이도: 하): 위생을 위하여 젖병 씻기 전용 세제, 전용 솔, 전용 바가지가 필요합니다. 이 외에는 설거지와 비슷.
  • 젖병 열탕 소독 (난이도: 상): 젖병을 끓는 물에 넣고 제때 꺼내어 전용 트레이에 올려놓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젖병 소독기 사용 (난이도: 상): 열탕 소독까지 마친 젖병을 건조시키고 소독시키는 작업인데 전용 소독기에 음성 피드백이 없어서 세부 설정을 조작하기가 어렵습니다.
  • 트림시키기 (난이도: 하): 아기가 트림하기 좋은 자세로 안고 등을 문지르거나 살작 다독여 줍니다. 안는 자세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 기저귀 갈기 (난이도: 중): 기저귀 갈기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배변 상태를 봐서 적시에 해주는 것이 어렵습니다.
  • 옷/스와들업/속싸개 입히고 벗기기 (난이도: 중): 옷감이 부들거려서 모양을 파악하고 방향을 맞추는 것이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 분유 포트 사용 (난이도: 상): 물을 끓여주고 분유에 적당한 온도인 36°C~37°C에 맞게 보온시켜 주다가 설정한 양만큼 출수키시는 용도인데 터치 버튼이고 음성 피드백이 없어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 목욕시키기 (난이도: 상): 세숫대야 2개와 아기 욕조 1개를 준비해 놓고 얼굴, 머리카락, 몸통을 차례로 씻겨준 후 헹궈주고 빠르게 건조시켜주어야 합니다. 아기 귀나 코에 물이 들어갈 수 있고 미끄러워서 놓치기 쉬우므로 옆에서 잡아주는 등 제한적인 역할만 가능합니다.
  • 엉덩이 물로 씻기기 (난이도: 상): 아기가 대변을 보았을 때 세면대나 씽크대에서 엉덩이를 씻겨줍니다. 판때기처럼 생긴 전용 비대를 받쳐놓고 씻길 수 있습니다. 목욕시키기보다는 난이도가 낮지만 역시 안전상의 이유로 역할이 제한됩니다.

시각장애인 아빠의 육아 필수템 🍼

그래도 분유를 타는 일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수월해졌습니다. 브레짜 분유 제조기가 시각장애인들의 구세주이더라고요. 분유와 물을 넣어주면 7초 만에 정확한 비율에 따라 미리 설정해 둔 양의 분유가 제조되어 커피 머신처럼 젖병에 쏟아집니다. 비단 시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많이들 사용하는 기계인데 시각장애인 육아 동지들에게는 필수품인 것 같습니다! (미리 알고 선물해 준 장교조 동지들에게 감사합니다!) 브레짜와 관련해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설정한 양보다 10mL 정도 더 많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점만 기억한다면 거의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육아템인 것 같습니다.


* 사진 by 유정

설명: 브레짜 분유 제조기. 제품의 윗면에 여섯 개의 버튼이 있다. 마치 한소네 버튼처럼 왼쪽에 3개, 오른쪽에 3개씩 있다. 중앙부에는 LCD 디스플레이가 있다. 버튼 아래 아이콘 모양의 LG전자 점자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브레짜의 버튼 구성은 오른쪽부터 다음과 같습니다.

  • 전원 버튼
  • 시작 버튼
  • 출수량(mL) 조절 버튼
  • 온도 조절 버튼
  • 청소 버튼 (물 빼는 용도)
  • 분유 브랜드 선택 버튼 (분유 제조사별로 할당된 번호가 다르며 각 브랜드에 해당하는 번호는 브레짜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해주는 육아템 💡

제가 도도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온 집안에 AI 스피커를 설치한 일인데요. 그동안 모아놓은 아마존 에코, 애플 홈팟 미니, 구글 홈 미니, 네이버 클로바 등 AI 스피커 6종을 집안 곳곳에 설치하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해 놓았습니다.아기를 재울 때 자장가나 파도 소리를 틀어주고, 아기랑 놀 때는 AJR이나 빅터 우튼, 칙 코리아 같이 분위기를 띄워주는 아티스트(부모의 개취가 다분히 반영됨!)의 음악을 틀어줍니다. AI 스피커는 저만이 아니라 유정도 정말 많이 사용하는데 아기를 안고 있다 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AI 스피커는 조리원에 있을 때도 가져다 놨을 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매우 중요한 육아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힘든 점 🥲

초보 전맹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난감한 것은 육아에 필요한 각각의 과업과 단계들이 글 또는 말로 되어 있는 것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유튜브 영상들은 대부분 내레이션이 없고 육아 관련된 수많은 글은 아주 디테일한 행동까지 묘사해 주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눈으로 배워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게 가장 힘든 점인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좋은 점 ❤️

그럼에도 아기가 내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때 이 모든 걱정과 절망감이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아기의 체온에는 어른의 마음을 녹이는 마술 같은 힘이 있습니다. 아기가 내 품에 폭 안겨서 잠들어 있을 때 저는 다른 아빠들과 똑같은 한 명의 아빠가 됩니다. 저의 장애를 잊고 오롯이 도도와 연결된 기분은 일종의 해방감이라고 표현할 만합니다.

이제 겨우 한 달 지났을 뿐이니 앞으로는 더 많은 난관이 있겠지요. 그래도 도도는 우리 가족에 찾아온 가장 큰 행운입니다. 도도만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배우고 더 행복한 육아생활해 보겠습니다! 🎶